김만태 교수 ‘훈민정음 오행성명’의 실증사례 ③ 홍길동전 허균


조선의 개혁사상가
허균(許筠)
81수 작명법의 許筠 이름의 길흉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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許(성 허, 11획) 筠(대나무 균, 13획) 원: 筠(13)=13수 ⇒ 총명격(聰明格) 지달운(智達運) ○ 형: 許(11)+筠(13)=24수 ⇒ 출세격(出世格) 축재운(蓄財運) ○ 이: 許(11)=11수 ⇒ 갱신격(更新格) 재흥운(再興運) ○ 정: 許(11)+筠(13)=24수 ⇒ 출세격(出世格) 축재운(蓄財運) ○ ☞ 총명하여 일생동안 매사 성취하며 출세하고 재물까지 모으는 아주 좋은 이름이다. 그러나 실제 삶은 일찍 처자식이 사망하였고, 탁월한 재주로 인해 오히려 일생동안 관직에 부침(浮沈)이 많았으며, 말년에는 역모로 처형을 당하였다. |
허균
ㅎ(水40) ㅓ(金60)
ㄱ(木30) ㅠ(水40) ㄴ(火30)
☞ 木30 火30 土0 金60 水80, 土는 전혀 없고 木火보다는 金水가 더욱 강한 이름이다.
1569.12.20(음력 11.03) 卯시, 서울 한성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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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일 |
월 |
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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癸 겁재 |
壬 일간 |
丙 편재 |
己 정관 |
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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卯 상관 |
申 편인 |
子 양인 |
巳 편재 |
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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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44 34 24 14 4 庚 辛 壬 癸 甲 乙 午 未 申 酉 戌 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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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일간: 壬水
② 일지: 申金
③ 월지(월령): 子水
④ 申子합(일지+월지)
⑤ 水 비겁(比劫) 태과
⑥ 겁재(劫財) 양인격(陽刃格)
⑦ 丙火 편재(偏財) 통근(通根)
⑧ 천을귀인(天乙貴人) 巳卯(연지․시지)
⑨ 대운(大運)이 水金으로 흐른다 ⇒ 일간과 겁재 양인의 기세가 더욱 왕성해진다.
허균(1569-1618)은 자신의 문집 『성소부부고(惺所覆瓿稿)』의 <해명문(解命文, 운명을 풀이하는 글)>에서 자신은 “기사(己巳)년 병자(丙子)월 임신(壬申)일 계묘(癸卯)시에 태어났다.”고 하며, 주위로부터 참소와 시기를 당하여 시대에 현달하지 못하고 억눌려 살아온 자신의 운명을 자신의 사주를 통해 직접 풀이하였다.
壬水가 양인(子水)․겁재(癸水)이 왕성하고 장생지(長生支)인 신금(申金)이 밑에서 바로 합하는 데다가 대운마저 水金운으로 흘러서 일간과 겁재 양인(水)의 기세가 더욱 왕성해진 사주이다. 木火土는 상대적으로 허약한 사주이다.
훈민정음 오행성명 분석 결과,
‘허균’ 이름이 土는 전혀 없고 木火보다는 金水가 더욱 강하여 사주를 보완해주지 못했다는 사실과 성패(成敗) 변화가 매우 다단했던 허균의 삶은 매우 연관성이 있다.
허균은 24살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발발로 피난 중에 부인 김씨와 장남이 사망하였다.
26살 정시 문과 을과에 합격하였다. 29살 문과 중시(重試)에 장원을 하고 정6품 예조좌랑에 오르고, 중국에 다녀와 병조좌랑으로 승진했다.
그러나 31살 황해도사(종5품)가 되었으나 서울 기생을 데리고 부임하여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파직 당했고 그 후 여러 사유들로 파직과 복직을 계속 반복하였다.
1617년(광해군 9)초부터 야기된 인목대비 폐비 논의에 논란거리를 제공하였다가 이듬해 50살 1618년 8월 24일 신미(辛未)대운 무오(戊午)년 임술(壬戌)월 경진(庚辰)일에 역모로 처형을 당하였다.
당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희생자로 비참한 최후를 맞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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