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김과 김봉남
국내 최초 남성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김과 김봉남(金鳳男)
1999년 8월 24일 ‘옷 로비’ 청문회장. 온통 흰색 차림에 짙은 화장을 한 한 남자가 들어섰다. 그는 증인 선서 때 자기 이름을 ‘앙드레 김’이라고 소개했다. 그러자 목요상 당시 국회 법사위원장(82)으로부터 “본명을 밝히라”는 지적이 나왔다. 그는 자기 이름을 ‘김봉남(金鳳男)’이라고 수정했다.
이 장면은 당시 TV 전파를 타면서 화제가 됐다. 온 국민이 가장 세련된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가 가장 토속적인(?) 이름을 쓴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특별검사(특검)제도를 도입한 이 로비 사건이 결국 흐지부지 끝나자 “검찰에서 밝혀낸 건 앙드레 김의 본명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당시 ‘김봉남’은 한국을 뒤흔든 세 글자가 됐다.

앙드레 김의 청문회 출두 소식을 다룬 1999년 8월 24일자 동아일보
이에 대해 앙드레 김은 “저는 제 이름을 부끄러워한 적이 한번도 없어요. 사람들이 제 이름을 가지고 말할 때 굉장히 실망스럽고 서글펐어요.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람은 지상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해서 예명을 사용하는 게 이상할 것도 없고요. 연예인들 중에 예명으로 활동하는 사람들 많잖아요?”라고 하였다.
일단 한 번 지어지면 수없이 불러지는 이름은 사람이 입고 있는 (좀처럼 벗기 어려운) 외투와 같고, 그 사람 겉모습의 일부가 되어서 그 사람의 특성과 정체성을 밖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지구상의 어느 이름들을 다 합친 것보다도 자신들의 이름에 더 많은 관심과 애착을 가진다.
당사자에게는 자신의 이름이 세상 그 어떤 단어보다도 가장 중요하면서 가장 듣고 싶은 말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그 이름을 영원히 명예롭게 남기고 싶어 하는 것이다.

복(福) 숟가락
사람들이 현세에서 행복을 소망하고 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자 인생의 최상 목표이다.
철학과 종교에서는 마음 수양과 도덕적 성숙이 행복의 지름길이라고 강조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수(壽)·부(富)·귀(貴)·복(福)’이라는 지극히 세속적인 것에서 행복을 느낀다.
이에 따라 이름은 자신을 다른 사람과 구별하기 위해 부르는 호칭 부호라는 본래의 의미를 넘어서 사람과 운명 간에 공명(共鳴) 작용을 한다.
또한 현대사회에서는 이름이 하나의 이미지와 상징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대사회는 밖으로 보이는 것을 중요시하는 이미지 사회이다.
그래서 성형을 통해 외모를 가꾸듯이 개명을 통해 이름을 더 좋게 바꾸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그렇다 보니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려는 경향이 강한 현대인들은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이더라도 촌스럽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신이 좋아하는 이름으로 개명하는 경우도 많다.
이름은 그 사람에 대한 인상(印象)을 좌우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면 한국의 대표적 패션 디자이너로 활약했던 앙드레김(1935~2010)이 있다. 그의 본래 이름은 ‘김봉남’이다.
‘앙드레김’이란 인물이 갖고 있는 재능과 잠재 능력은 ‘김봉남’과 같았지만 만약 자신의 이름을 ‘앙드레김’으로 사용하지 않고, ‘김봉남’을 계속 사용했더라면 과연 ‘앙드레김’이라 불릴 때만큼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았을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이름은 단순히 몇 음절의 단어에 그치는 것이 결코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자기 존재의 또 다른 모습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이름, 즉 성명(姓名)에는 언어학적 관점으로만 이해하고 접근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추론도 충분히 가능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