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명리학의 시대적 위상과 의미③
AI가 점점 더 많은 일을 해내는 시대다. 번역도 척척, 그림도 뚝딱, 코드도 순식간에 만들어 낸다. 하지만 여기 놀라운 역설이 있다. AI가 발달할수록 오히려 인간다움의 가치는 더욱 빛나는 것이다.
AI가 아무리 발달해도 어머니가 끓여주신 된장찌개의 따뜻함을 재현할 수 있을까? 그 맛이 특별한 이유는 레시피 때문이 아니다.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 손끝에 담긴 정성, 그리고 함께 먹는 시간의 소중함 때문이다.
AI는 완벽한 레시피로 요리할 수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사랑과 추억은 절대 복제할 수 없다. ‘감성지능’의 관점에서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인간의 감성지능은 단순히 감정을 인식하는 것을 넘어선다. 상황의 미묘한 뉘앙스를 파악하고, 상대방의 표정과 목소리 톤에서 숨겨진 감정을 읽어낸다.
무엇보다 진정한 공감은 유사한 경험과 감정을 가진 존재만이 할 수 있다. 특히 복잡하거나 감정적인 문제일수록 더 그렇다. AI가 기본 정보를 제공하고, 인간 상담사가 깊은 공감과 맞춤형 조언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AI 시스템이 내놓는 결과물은 우리에게 현실이자 실제 상황이며, 실질적인 지능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AI가 인간을 속속들이 알고, 지나치게 정확한 결과를 내놓기 때문에 우리는 깜짝 놀라면서 AI가 우리와 같다고, 심지어는 우리보다 똑똑하다고 여긴다.
알파고 쇼크 이후 10년, 우리는 이제 AI가 인간보다 바둑을 잘 둔다는 사실을 상식처럼 받아들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바둑의 가치는 오히려 더 높아졌다. 우리는 기계가 가질 수 없는 ‘인간의 서사와 고뇌’를 보기 위해 바둑판을 바라본다.
초읽기에 몰려 떨리는 손끝, 패배를 직감하면서도 끝까지 기적을 노리는 눈빛, 이것은 데이터가 아니라 살아있는 영혼의 영역이다. AI는 바둑을 ‘계산’하지만, 인간은 바둑을 ‘경험’한다.
AI 시대에도 인간은 필요하다. 일자리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들 사이의 서열이 바뀐다. 학력, 경력, 직급으로 결정되던 서열이 AI를 활용해 가치를 만드는 능력으로 재편된다. 이것이 가장 불편한 진실이다. 대체가 아니라 재배치이다.
인공지능이 똑똑해질수록 우리는 더 다정하고 인간다워져야 하며, 기술이 정교해질수록 사유는 보다 깊고 넓어져야 한다. 차가운 지능이 세상을 덮을 때, 인간의 온기는 이 지구상에서 가장 희소한 귀한 자산이 될 것이 분명하다.
완벽한 알고리즘이 빚어낸 매끄러운 결과물보다 훨씬 소중한 것은, 인간의 서툰 시도와 우연한 발견, 그리고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서는 끈질긴 회복 탄력성이다.
기계가 결코 모방할 수 없는 우리의 불완전함과 눈물, 그리고 엉뚱한 상상력이야말로 이 거대한 기술 문명을 지탱하는 마지막 보루이다. 데이터로 환산할 수 없는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감 능력이야말로 우리가 끝까지 놓치지 말아야 할 견고한 키(Helm)가 될 것이다.
즉 인공지능 기술이 인간의 수많은 기능을 대체함에 따라, 우리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고유한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그 해답은 창의성, 공감, 도덕적 상상력과 같이 기계가 모방할 수 없는 인간적인 것에 있다. 기술 시대일수록 오히려 인간다움의 가치를 재발견해야 한다는 역설이 바로 여기에 존재한다.
샘 올트먼은 “AI를 활용할 때 답을 알아내는 것보다, 어떤 질문을 할 것인지 알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면서 AI의 잠재력은 기술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활용하는 사람의 ‘의지와 창의력’에 달려 있음을 강조한다. 가장 중요한 관건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만들고, 왜 만들어야 하는지를 아는 인간의 통찰에서 비롯된다.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기술은 인문학과 예술의 교차점에서 진정한 빛을 발한다”라고 말한 것처럼 인문학적 통찰과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데이터로 확률을 계산하는 능력만으로는 불연속적 변화의 파동을 감당할 수 없다. 직관과 통찰을 바탕으로 변화의 징후를 미리 읽어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물리학을 전공한 일론 머스크는 ‘제1원칙 사고(First Principles Thinking)’라고 해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상식에 의존하지 말고, 물리학처럼 근본적인 원리에서 출발하라.”라고 말한다.
우리가 지금 배운 기술은 언제든 낡고 사라지겠지만, 본질을 꿰뚫는 사고력은 어느 시대에든 유효하다. 단순히 지식이나 공식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현상을 ‘왜 그런가’라는 질문으로 해체하고, 다시 ‘어떻게 가능한가’로 재구성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진다.
명리학이 체계를 비로소 확립한 것은 청(淸)나라 1776년 심효첨(沈孝瞻)이 저술한 『자평진전(子平眞詮)』과 1840년대 후반 임철초(任鐵樵)가 저술한 『적천수천미(滴天髓闡微)』로부터이다.
그때부터 약 200~250년이 흘렀으나 지금의 명리학 수준은 더 진보되지 못하고 정체되거나 오히려 퇴보되어있는 실정이다. 명리학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그 원리가 왜 그렇게 생겨났는지는 묻지도 않고 단편적 지식을 외우기만 해서 돈벌이에만 급급하다.
지금까지 명리학이 사이비 학문으로 비하되어온 까닭은 외부의 오해나 편견보다는 그동안 명리학계 스스로 학술적 조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탓이 훨씬 더 크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라도 명리학 자체에 대한 심층적인 학술적 고찰과 비평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AI 도구를 수준 있게 잘 활용한다면 명리학의 미흡했던 학술적 체계가 정비되는 데 매우 유익할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바탕으로, AI 주도 초현대사회로 빠르게 나아가는 현 시대적 상황에서 명리학과 명리 상담업계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국면으로 나아갈 것으로 연구자는 생각한다.
① AI 등장으로 업무의 ‘초점’이 효율성에서 탁월함으로 옮겨갔다. 과거에는 물리적 시간의 한계 때문에 적정 수준에서 타협해야 했던 부분들이 있었다면, 이제는 AI를 통해 확보한 시간을 투입해 결과물의 정밀도와 완성도를 한계치까지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따라서 그동안 미흡했던 명리학의 이론적 체계와 논리적 구성이 AI를 보조 수단으로 잘 활용하는 고도로 탁월한 명리 연구자에 의해 그 완성도가 더욱 높아지고 정합성이 더욱 확보될 것이다. 이들에게 AI는 경쟁자가 아니라 본인의 지성과 능력을 비약적으로 확장할 수 있게 도와주는 파트너(동료)가 될 것이다.
② 사주를 물었을 때 지금 AI 에이전트가 말해주는 수준 정도, 즉 사주를 완벽하게 맞추기보다는, 모호하고 두루뭉술하게 무의미한 말만 내뱉는 수준의 명리 상담가들은 빠르게 도태될 것이다.
왜냐하면 AI 상담은 접근성 면에서 혁명적이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고, 비용 부담이 적으며, 무능하면서도 영악하고 사기성이 농후한 인간보다는 AI가 오히려 더 정확하고 따뜻하며 위로가 되는 말을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저급한 명리 상담가들에게는 사람들이 앞으로 더 이상 발걸음을 옮기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AI 에이전트가 현재 수준 미달이면서 돈벌이에만 급급한 명리 상담가들은 빠르게 대체할 것이다. 즉 AI 에이전트가 기준이 되어 그 수준을 넘어서는 진짜 전문가들은 그 존재가치를 더욱 높일 것이고, 그 이하의 상담가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③ 아무리 AI 기술이 극대화되고 AI가 일상생활의 중요한 부분이 되더라도 인간적 연결(관계), 판단력, 경험, 신뢰, 감응성(공감성) 등이 필요한 부분은 오히려 더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부상할 것이다.
앞으로 상용화(常用化)되는 범용 인공지능(AGI)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지적 작업을 인간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으로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논리적 사고력, 문제해결 능력, 추상화 능력, 비판적 사고 능력, 메타인지 같은 것, 무엇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인지, 무엇이 윤리적으로 옳은 결정인지에 대한 안목 등은 여전히 인간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관한 안목과 상식적인 이해, 희로애락의 감성을 가르치지 않고서는 인공지능도 반드시 한계가 있을 것이다.
대규모 언어모델․추론모델이 대부분의 지식 노동을, 피지컬 AI가 대부분의 육체노동을 대체할 조만간 미래 사회에서 인간이 제공할 수 있는 독점적인 가치는 바로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과 기계가 흉내 내지 못하는 인간다움, 감성지능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명리학과 명리 상담학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400년 전 자신의 운명을 되뇌던 허균, 200년 전 신세 한탄하던 흥부 마누라, 오늘날 AI에게 사주팔자를 묻는 우리는 여전히 ‘인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