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명리학의 시대적 위상과 의미①
허균(許筠, 1569~1618)은 “나는 평소에 의심하기를 성명가(星命家)가 사람의 운명을 추산하는 것이 대부분 맞지 않는 것은 반드시 술인(術人)이 근거 없이 책을 짓고 요행으로 억측하여 맞춰서 세상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것이라 여겼는데 지금에 와서 더욱 징험이 된다.”라고 하면서 사주와 운명을 부정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신이 살아온 인생역정이 짜 맞추듯이 사주풀이대로 되는 걸 보고서 기이하다 여기며 스스로 직접 자신의 사주를 풀이하는 글인 해명문(解命文)을 짓기도 했다.
조선의 개혁 사상가 허균도 처음에는 사주팔자대로 사람의 운명이 정해짐을 부인하려는 입장이었지만 점차 자신의 인생경로가 사주풀이와 부합되는 걸 보면서 사주팔자의 타고난 운명이 존재함을 점차 인식하게 되었다.
허균은 고위 양반 출신으로 중앙 정계의 요직을 두루 거쳤으나 『홍길동전』에서 보듯 봉건 왕조사회의 불평등 문제를 제기하고 왕조체제에 도전하는 혁명사상을 지녔다가 결국 역모(?)에 연루되어 처형되었다. 이처럼 반왕조적 혁명 민중사상을 지닌 허균이 사람 운명의 존재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깊이 인식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약 200년 전 조선 후기 신재효(1812~1884)의 판소리 사설에서 흥부 마누라가 살아가는 게 너무 힘들어 죽기로 작정하고 복을 못 받은 신세를 한탄하며 진양조장단으로 서럽게 읊는 대목의 내용은 지금 이 시대의 우리에게도 변함없이 그대로 사주팔자가 갖는 의미가 잘 드러난다.
애고애고 설운지고, 복이라 하는 것을 어쩌면 잘 타는고. 북두칠성님이 마련하시는가, 제왕 산신님이 점지하신가. 생년 생월 생일 생시, 팔자에 매였는가, 승금상수(乘金相水) 혈토인목(穴土印木) 묘쓰기에 매였는고, 이목구비 오악으로 생기기에 매였는가. 적선행인(積善行人) 은악앙선(隱惡仰善) 마음씨에 매였는가, 어찌하면 잘 사는지 세상에 난 연후에 불의행사(不義行事) 아니하고 밤낮으로 벌어도 삼순구식(三旬九食) 할 수 없고, 일 년 사철 헌 옷이라. 내 몸은 고사하고 가장은 부황나고 자식들은 아사지경(餓死之境), 사람 차마 못 보겠네. 차라리 자결하여 이런 꼴 안 보고저. 애고애고 설운지고.
“북두칠성, 삼신제왕, 산신, 사주팔자, 묫자리(음택풍수), 관상(觀相), 적선(積善)하는 마음씨 등에 사람 명(命)의 길흉화복이 달렸는가?”라고 울부짖는다. 이처럼 한국인의 삶은 타고난 팔자 속에서 팔자소관대로 살다가 그렇게 죽을 팔자라서 죽는다는 일련의 운명인식 과정 속에서 이뤄진다.
그런 가운데 팔자타령을 늘어놓고 팔자 탓을 하다가 타고난 팔자가 못내 궁금해 여기저기 사주를 보러 다닌다. 한국인으로서 살아가는 동안 사주팔자는 발끝에 걸리는 돌부리처럼 한국인의 의식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사주팔자는 한국인의 기층 인식체계에서 근간을 이루며 면면히 작용하고 있다.
사주명리는 음양오행(陰陽五行)․천지인삼원(天地人三元)․중화(中和)․정명(定命) 등을 사상적 기반으로 하여 인간 운명의 길흉과 직결되는 빈부․귀천․요수(夭壽)․화복(禍福) 등의 원인을 찾고 그 개선방안을 추론하는 논리체계로서, 사람의 생년월일시를 육십갑자(六十甲子)로 변환한 간지(干支) 부호를 그 분석 도구로 삼는다.
따라서 사주명리의 체용(體用)을 살펴본다면 음양오행론․천간지지론․정명론․삼원론․중화론 등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 본질인 체(體)이고, 빈부․귀천․요수․길흉․화복 등의 예지 판단은 개선의 여지가 있는 활용과 현상인 용(用)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체용 관계를 염두에 두고서 사주명리를 이해하여야 가장 온전하게 명리학을 연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인생의 진로 방향이나 길흉화복은 개인의 노력이나 의지, 타고난 사주(팔자) 등 소수의 한정 요인에만 영향을 받아 결정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인간사는 매우 복합적이고 다단하므로 운명 결정이냐 자유의지냐의 이분법적 흑백논리로 그 해답을 쉽게 찾을 수 있는 단순한 것이 절대 아니다. 인생 진로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은 수없이 많다.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인간사, 사람의 생활 가운데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은 더욱더 수많은 요인이 얽히고설켜서 만들어지는 비선형계(非線型界)이자 복잡계(複雜界)이다. 이러한 운명아(運命我)의 가능성을 추론하는 것이 바로 사주명리이다.
그러므로 타고난 생년월일시 사주를 비롯한 운명함수 요인들은 개개인의 미래 운명에 대해 절대적 필연성(必然性, inevitability)이 아니라 확률적 개연성(蓋然性, probability)만을 담보한다. 비록 사주가 똑같더라도 똑같은 인생과 운명을 살아가지 않는다는 엄연한 사실을 우리는 직시하고 인정해야 한다.
사주명리는 사람의 생년월일시를 천간과 지지로 각각 치환한 사주를 대상으로 음양오행의 생극제화(生剋制化) 등을 통해서 그 상호 관계를 해석하여 사람 운명의 진로 방향을 예지 판단하는 추론 체계이다. 그중에서도 간지의 통근(通根)과 투간(透干), 육신(六神)의 계통이 서로 잘 연결되어 있는지가 관건이 된다.
명리학적으로 이름․전공․직업․배우자․거주지 등 후천적 요인도 음양오행과 분명히 연관된다. 100% 전부 후천적․자기 선택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내가 선택할 여지가 충분히 있는 이들 요인을 통해 나의 선천 사주에서 부족하거나 넘치는 사항을 보완해 나간다면 같은 사주더라도 그 사주의 타고난 복분(福分) 범위 안에서 최대함을 누릴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라도 사주명리는 필연성(必然性)이 아니라 개연성(蓋然性), 확정성(確定性)이 아니라 가능성(可能性)을 염두에 두고서 사주를 분석해야 한다. 이를 달리 말하면 앞으로 사주명리는 백발백중(百發百中)이 아니라 백중일발(百中一發)을 지향해야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하나의 사주를 가지고 사주가 같은 백 사람의 어느 경우든지 틀리지 않고 꼭꼭 들어맞는 그런 사주명리가 아니라 그 하나의 사주에 담긴 많은 가능성을 분석하여 그 사람의 잠재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탐색 과정으로서의 사주명리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LLM(대규모 언어모델)․LRM(대규모 추론모델)이 대부분의 지식 노동을, 피지컬 AI가 대부분의 육체노동을 대체할 미래 사회에서 인간이 제공할 수 있는 독점적인 가치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기계가 흉내 내지 못하는 인간다움’이다.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경제의 본질은 단순하다. 인간은 희소한 것에 기꺼이 큰돈을 지불한다. 예를 들어 보자. 우리는 정확한 시간을 알려줄 뿐 아니라, 새로운 온 문자를 알려주고, 건강 상태까지 체크해주는 스마트워치를 몇십만 원에 살 수 있다. 이렇게 실용적이고 완벽한 도구가 있는데도 사람들은 수시로 시간이 틀리고 무거운 수백만 원짜리 기계식 시계에 열광한다. 이러한 비효율성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기계식 시계를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그 안에는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지 못하는 희소한 인간 장인의 땀과 혼 등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아날로그적 감성과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기술의 진보가 모든 것을 평범하게 만들 때, 일부는 희소성이라는 방패로 대응했다. 프라다와 샤넬 등 현대의 명품은 기계적 효율성을 넘어선 인간의 탐미적 집착과 적응력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미래를 읽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예측, 예지, 그리고 예견이다. 예측은 과거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확률을 계산하는 능력이고, 예지는 감각과 직관으로 미래의 변화를 감지하는 능력이며, 예견은 그 둘을 넘어 변화의 패턴과 목적을 해석하는 통찰이다.
앞으로의 미래는 선형적 진화가 아니라 단절과 재구성이 반복되는 흐름으로 전개된다. 따라서 불연속의 시대를 이해하는 힘은 통계가 아니라 패턴을 읽는 눈에서 나온다. 앞으로 시대에는 직관과 통찰을 바탕으로 변화의 징후와 그 흐름을 미리 읽어내는 능력, 즉 예견이 더 필요하다.
예전에는 인간적 공감이 필요한 심리상담이야말로 AI가 절대 대체하지 못할 것으로 여겼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인공지능이 놀랍게도 논리적이면서도 따뜻한 심리상담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오랜 세월 종교가 인간의 심리적 고통을 어루만지고 위안을 주던 역할을 해왔는데, 이 기능을 이제는 AI가 대신할 가능성이 현저히 커졌다.
AI 상담은 접근성 면에서 혁명적이다. 지리적 제약이 없고, 비용 부담이 적으며, 낙인에 대한 두려움 없이 상담을 받을 수 있다.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접근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인간보다 더 정확한 분석을 제공하는 AI 상담 휴머노이드는 의미 있는 사회적 공헌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부작용은 AI에 대한 인간의 의존성이다. 최근 많은 이용자들이 챗봇을 열어 사고와 판단, 심지어 감정까지 묻는다. 자기의 판단보다 AI의 판단을 더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이다.
즉각적이고, 모든 답변을 해주는 AI는 결국 사용자를 점점 더 조급하게 만들고 더 빠르고, 더 정확하고, 더 쉬운 지침을 찾게 한다. 이는 사용자에게서 기다림, 인고의 과정, 정답 없는 현실을 견디는 힘을 빼앗아 간다. 그러면 사용자는 더욱 AI에 의존하게 된다. 이런 현상이 가중되면, 사람들은 스스로 고민하면서 해답을 찾기보다 챗봇을 먼저 찾는 습관이 만들어질 수 있다.
AI가 제공하는 디지털 정보는 언어화된 신경망 뒤에 숨겨진 확률적 모델일 뿐이다. AI는 감정을 느낄 수 없고, 영성은 더욱 존재하지 않는다. AI와의 대화를 통해 인간이 감정과 영성을 느끼는 것은 AI가 생성한 언어에 인간이 정서를 투사한 것, 즉 AI를 향한 의인화일 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많은 사용자가 AI와 대화를 통해 감정과 영성을 느끼고, 챗봇에 인생 상담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