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하나님의 특별 섭리 안에서 인간의 예정된 운명을 구원하고자 하는 종교이고,
명리학은 해와 달이 뜨고 지며(음양) 춘하추동 사계절이 순환되는(오행) 보편 이치로써 인간의 예정된 운명을 개선하고자 하는 자연철학이다.
이남호(철학박사, 성공회 신부)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기독교(基督敎)와 명리학(命理學)은 마치 물과 기름처럼 서로 섞이지 않는 소원(疎遠)하고 이질적인 체계로 인식되고 있다. 따라서 각각 기독교는 양지에서, 명리학은 음지에서 크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대표적인 신념체계로 자리 잡았다.
운명관의 측면에서 기독교의 예정론(predestination)과 명리학의 정명론(定命論)은 비슷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인간의 운명이 외부의 힘에 의해 정해진다고 보는 점이다. 기독교의 교리 중에서도 예정론은 인간의 구원이 전적으로 신(神)에게 달렸다고 보는 이론이다. 인간의 구원이 신에 의해 좌우되고 있음이 신약성서와 구약성서를 통해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으며, 어거스틴과 칼빈은 이를 바탕으로 예정론을 기독교의 하나의 공인된 교리로서 정립한다.
예정론은 신의 선택을 받은 자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으며, 우리의 믿음 역시 신의 선택에 대한 응답이라고 본다. 그리고 선택받은 자는 성화(聖化)와 견인(堅忍)을 통해 점점 더 신에게 다가서지만, 선택을 받지 못한 자는 더욱 완악(頑惡)해져서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 예정론의 골자이다.
선진유학 사상 역시 인간에게는 하늘[天]이 정해준 운명이 있다고 본다. 이러한 운명 사상은 『주역(周易)』과 『서경(書經)』, 『논어(論語)』 등에 잘 나타나 있다. 또한 고대 중국인들은 하늘의 관찰을 통해 음양오행론을 정립하였다. 그리고 음양오행의 움직임을 간지역법으로 표현하면서 비로소 인간의 운명을 구체적으로 살필 수 있게 되었다. 즉 간지역법을 통해 인간의 운명을 가늠하는 학문이 바로 명리학인 것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와 명리학은 어떻게 공존·양립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기독교의 교리인 섭리(攝理)를 통해서이다. 섭리는 특별섭리(特別攝理)와 일반섭리(一般攝理)로 구분된다. 특별섭리는 신의 직접적인 개입에 의해서 일어나는 작용을 말한다. 따라서 기독교의 예정론은 특별섭리에 속한다.
반면 일반섭리는 신이 피조물을 창조할 때 피조물에게 위임한 법칙이다. 즉 하늘과 자연의 운행을 설명하는 음양오행론은 일반섭리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 음양오행론은 명리학 운명론의 바탕이 되므로 명리학은 기독교의 일반섭리 안에 수용될 수 있는 학문이고, 기독교와 명리학은 서로 공존과 양립이 가능하다.
김만태(문학박사, 前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교수)
명리학은 인생 상담의 한 분야로서 충분한 잠재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명리학이 비합리적인 술수로 여겨진 까닭은 오해나 편견의 문제라기보다는 그동안 명리학 스스로 학술적 조건을 제대로 갖춰오지 못한 탓이 훨씬 더 크다. 지금 필요한 것은 명리학을 위한 옹호와 변명이 아니라 명리학 자체에 대한 학술적 고찰과 비평이다. 그래서 명리학의 이론적 체계화와 정합성(整合性) 확보가 더욱 본질적인 선결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명리학이 그 학술적 체계를 온전히 갖추지 못한 탓에 사주상담을 빌미로 파생되는 문제들을 결코 배제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명리학[學] 자체의 문제점과 이에 종사하는 명리인[人]의 문제점은 반드시 구분해서 살펴봐야 한다. 즉 사주상담을 업(業)으로 종사하는 사람들이 자행(恣行)하는 문제들을 명리학이 지닌 한계나 문제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