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전형필 선생이 입수한 원본 『훈민정음』은 경북 안동시 와룡면 진성이씨 이한걸 집안의 가보(家寶)였다.
퇴계 이황의 종파(宗派)이며, 일찍이 먼 조상이 여진 정벌의 공이 있어 세종대왕으로부터 『훈민정음』 1권을 상으로 받아 가보로 전해 오다가 연산군 때 언문책 소지자를 엄벌할 때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부득이 첫머리 두 장을 뜯어 버리고 돌돌 말아서 상자에 넣어 비밀리에 보관해 오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1504년 갑자사화 때 사라졌던 원본 『훈민정음』인 해례본이 1945년 광복 후 441년 만에 다시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그 사이 훈민정음이 만들어진 원리와 이치를 모르다 보니 입술소리(ㅁ)가 土인데 水로, 목구멍소리(ㅇ)가 水인데 土로 잘못 전해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구마사키 겐오가 1929년 <성명의 신비(姓名の神祕)>에서, 일본 문자(히라가나․가타카나)를 오성(五性)으로 각각 분류하면서 아(阿)행과 와(和)행은 토(土)로, 파(波)행과 마(麻)행은 수(水)로 분류하였다.
이것이 1940년 조선총독부가 강제로 시행한 창씨개명(創氏改名) 때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전파되었다.
이런 일제 식민통치의 잔재가 청산되지 못한 채, 그대로 답습되어 현재 우리나라 대다수 작명가, 모든 작명앱․작명프로그램들은 ‘81수 원형이정 작명법’과 마찬가지로 土인 입술소리(ㅁㅂㅍ)를 水, 水인 목구멍소리(ㅇㅎ)를 土로 오행을 잘못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거의 모든 작명가들은 『훈민정음』 원본인 『훈민정음해례』의 오행 상생 순서도 모른 채, 土인 입술소리(ㅁㅂㅍ)를 水, 水인 목구멍소리(ㅇㅎ)를 土로 오행을 뒤바꾸어 적용하면서도 그 오류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자음과 오행의 상생 관계
한글 자음과 모음의 오행 배속